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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회생,파산]-진술서 견본-63년생 여성의 채무증대 경위서

2011-06-15 13:11:40   , 2315 조회

작성자: 로도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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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회생,파산]-진술서 견본-63년생 여성의 채무증대 경위서

저는 전라도 진안에서 4남매중 셋째로 당시 농업에 종사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은 하였지만 저희 가정은 늘 행복해 했습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저는 초등학교만 졸업을 하고 학업을 중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더 이상의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이어갈 수가 없었으며 저는 부모님을 도우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부모님 지인의 도움으로 전북 익산으로 취직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회 첫 생활은 약품 포장을 하는 공장이었습니다

어린 여자로써 많은 급여를 받은 저는 열심히 일하면서 급여를 부모님에게 보내드리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장은 내부 사정으로 인하여 휴업을 한다고 하였으며 저는 순간 실직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실직 후 저는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 안산으로 조그마한 월세집을 얻어 이사를 갔으며 그곳에서 저는 다른 업체에 취직을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일을 하다가 저는 친구의 주선으로 현재의 남편을 만나 교재하다가 혼인신고만 하고 결혼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도 태어났으며 저는 전업주부로 인생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의 남편은 한 제재 공장에서 일을 하였으나 급여가 자주 나오지 않았으며 남편은 곧 회사를 나오게 되었습니다니다

남편은 실직후  여러 가지 일들을 찾아다니면서 생계를 위해 노력을 다하였지만 구직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카드를 발급받을 수가 있었으며 남편과 같이 카드를 사용하면서 생계를 위해 일부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도 당시 가정의 일부 도움을 주어야 했기에 어린 아이들을 친정에 맡기고 식당 주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하고 못난 남편을 만나 고생을 한다며 저를 위로하는 남편과 함께 힘은 들었지만 그래도 너무나 행복해 했습니다

언젠가는 어려운 가정형편을 이겨내겠지 하는 바램으로 저희는 주어진 일에 각자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가정형편은 나아질 줄을 몰랐으며 저는 당시 카드등 은행의 출입을 자주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의 이용으로 끝낼 카드사용의 이용은 점점 사용횟수가 많아지고 있었습니다
그즈음 남편은 지인의 소개로 떡 재료영업이라는 것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떡 공장에서 물품을 받아 일반 떡 집에 납품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반 영업이라 고정적인 급여는 없었으며 영업마진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거래처 확보를 위해 불철주야 움직였으며 저는 당시에도 일반 식당에 시간제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거래처는 어느새 수십여군데로 늘어났다고 했으며 어느 날에 집에 수십만원을 갖다 주는등 저는 이제는 우리도 부자가 되겠구나 하는 마음에 너무나 너무나 행복해 했으며 남편의 권유로 저는 식당을 그만두고 아이들의 양육에 온 힘을 쏟아 부으며 남편을 내조하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한 남편의 공장영업은 조금 힘이 들었나 봅니다
집에 갖다 주는 돈은 점점 적어지고 어떨때는 갖다 주지 못하고 저에게 일부 현금서비스를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조금은 불안하였지만 남편은 믿었습니다
남편은 퇴근 후에 자주 집에 떡을 갖다 주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남편은 거래처에서 판매부진으로 남은 떡을 저희 집에서 폐기처분식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떡이 징그러울 정도까지 이어질 정도였습니다

몸이라도 성해야 할 터 인데 남편은 예전부터 앓아온 허리의 통증( 척추 4~5번 )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끈길듯한 아픔속에서도 병원다운 병원을 다니지 못하였고 더 이상의 아픔을 이기지 못한 남편은 잠시 집에서 쉰다는 것이었으며 저는 다시 남편의 동의를 얻어 다시 구직을 하게 되었으며 저는 김밥24시 분식집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남편이 갖다 주지 않은 생활비로 인해 저는 자주 은행을 이용하였으며 또한 그래도 몸이 성한 저는 가만히 남편이 가져다 주는 미비한 생활비로는 생계의 어려움을 느껴 저도 생활비를 벌어야 했습니다

남편은 집에서 요양을 하고 다시 떡 영업을 한다고 하여 출근을 하였으나 남편의 거래처는
몇군데 안 남고 없어지거나 또한 다른 공장 영업사원에게 거래처를 뺏기고 말았습니다

결국에는 남편이 떡 영업을 그만둔다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가장 역할을 한다며 이리저리 구직을 구했지만 그리 쉽지가 않았으며 저는 식당에서 버는 금액으로 생활을 하면서 지내다가 부족한 생활비를 은행의 도움을 받고 또한 변제하고 다시 은행을 이용하고 그러한 반복적인 생활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카드 대금을 변제하지 못하자 무서운 추심이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저희 가정은 점점 파탄의 가정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저의 채무 추심 남편의 추심 및 물품대금 소송장등등 그러한 가정속에서 큰 아들은 친구가 있는 인천으로 내려가고 작은 아들은 군대에 갔고 저와 남편은 같이 채무 추심속에서 하루하루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어느 덧 부부가 같이 신용불량자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으며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였으나 저희 부부같은 신용불량자의 길은 정말로 험난하기만 하였습니다

여자인 저는 식당에서 일용직으로 있다가 식당 폐업 속에서 다시 실직이 되었으며 수 많은 고민속에서 저희 부부는 젓갈을 파는 노점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홀로 힘든 육체(디스크)로 일을 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어 저는 남편과 같이 현재 젓갈 노점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지만 저희 부부가 같이 노점상을 하며서 한달에 버는 일백여만원으로는 도저히 남편과 저의 채무를 감당할 수가 없어 이렇게 조심스럽게 파산이라는 제도를 지인의 도움으로 청하게 되었습니다

갚아야 할 채무지만 갚지 못해 파탄난 가정속에서도 그래도 갚아야 함을 뼈져리게 알고 있기에 노력에 노력을 다하였으나 저희 부부는 한계에 다다라 이렇게 존경하는 판사님께 선처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보다도 더한 고통과 절망을 앉고 계시는 은행 및 공장관계자 여러분을 일일이 찾아 뵙고 용서를 구해야 함이 마땅하지만 그렇지 못한 못난 저희 부부를 부디 제발 존경하는 판사님께서 선처와 관대한 판결을 내려주시어서 늘 절망의 빚에서 허덕이는 저희 가정의 희망의 빛을 내려주시기를 목놓아 다시한번 부탁말씀드립니다

이러한 힘들고 어려운 부탁을 드려 너무나 죄송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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