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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파산]-진술서 견본-부부 파산 신청자의 채무증대 경위서

2011-06-15 13:08:03   , 2152 조회

작성자: 로도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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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파산]-진술서 견본-부부 파산 신청자의 채무증대 경위서


신청인은 1956년 경기도 양평에서 2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OOO 입니다. 신청인의 아버지는 6.25때 총상을 입으셔서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머님께서 노점을 하시며 저희 4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여자 혼자 6식구의 입고 쓰는 비용을 충당 하셔야 했기 때문에 강하고 억척스럽게 어머니는 가정을 꾸리셨습니다.
어려운 살림 속에도 어머니는 신청인의 학업을 걱정하셨고 고등학교까지 보내고자하셨지만 도저히 생활이 어려워 고등학교 진학은 불가능했고 신청인이 하루빨리 돈을 버는 것이 효도였기 때문에 1972년 양동 중학교를 졸업으로 경제활동에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1972년 중학교 졸업 후 건설 현장 일용직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일거리가 있는 곳 이면 어디든 움직였습니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1977년 군 입대 하였고 직업 군인에게 많은 혜택이 있었기 때문에 직업 군인으로써 생활을 연장하였는데 어린시절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1982년 직업군인으로 제대하게 되었습니다.
군 근무시 지금의 배우자인 OOO(신청인과 함께 파산 신청을 하였습니다)을 만나 교제하였고 제대 후 결혼을 위해서도 바로 일을 해야 했는데 신청인이 할 줄 아는 것 이라곤 건설현장 막노동 이었습니다.

항상 부족하고 모자란 생활이었지만 배우자는 신청인을 따르며 열심히 가정을 돌봐주었고 그것이 고마워 신청인도 더욱 잘해줘야 겠다는 마음으로 배우자와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아내는 부모님을 일찍이 여의었기 때문에 유난히 신청인을 잘 따라줬고 뭐든 함께하면 될 것이란 긍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아내와 같이 다른 것 없이 열심히만 살다보면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란 믿음으로 일용직일에만 전념했는데 벌이가 점점 시원치 않아지고 고민이 많아질 때 쯤 신청인의 누이가 치킨 가게를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누이는 당시 치킨가게를 하며 아이들 잘 키우고 생활하고 있었기에 신청인의 부부는 누이의 가게에 몇 개월간 일을 도우며 장사에 필요한 여러지식과 노하우를 전수 받고  치킨가게를 열기로 했습니다.
아내와 같이 하면 지금 보다 나을꺼란 막연한 희망도 생기면서 가게 이곳 저곳을 알아보았더니 창업자금이 꽤나 들어가 당시 있는 돈으론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1986년 약간의 무리가 되었지만 집 전세금을 빼서 금액을 맞추기로 하고 작은 방 이었지만 살림을 함께 할 수 있는 가게를 얻을 수 있었고 어렵사리 방 딸린 치킨가게를 신청인의 고향인 양평에  열었습니다.

그 이후 큰 돈이 벌리는건 아니지만 아내와 함께 있으니 막노동을 할때 보다 훨씬 마음도 편하고 덜 고되게 느껴졌습니다. 또 가게안에 살림집이 있는것이나 다름없어 맞벌이 하는 다른 집처럼 엉망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가게도 그 만큼 신경을 쏟아서 인지 무리없이 생활이 가능했고 조금 더 아끼면 저축도 할 수 있게 되어 안정을 찾아가나 했습니다.

웬만큼 자리를 잡았을 즈음 저희가 장사하던 건물의 땅이 급매가로 나왔단 소식을 듣게 되었고, 10년이상을 좁은 집에서 살다보니 이사도 고려하던 상황이라 아내와 고민 끝에 땅을 매입하여 주택을 지어,음식솜씨가 남달랐던 아내였기에, 그 땅에 저희 부부가 노후를 보낼 집과 식당을 짓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당시 가지고 있던 돈에 대출을 좀 받고 지인에게 차용도 조금 하면 충분하진 않았지만 얼추 가능할 것으로 계산되어 매입하여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신청인의 가정에 꿈이 이루워지는 감격스러운 공사였습니다. 허나 공사비용은 생각을 벗어나 무지하게 늘어갔고 추가 대출을 받아야 했습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신청인이 직접 현장에서 일하고 아내가 인부들의 식사를 준비하는등 나름대로 아낄 수 있는것은 모두다 아꼈지만 현실은 저희가 생각했던것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게다가 땅 매입당시 매입하려던 부지옆에 조그만한 자투리 땅이 있었는데, 소유자 ‘000’씨의 권유로 그땅까지 매입을 하겠다 결정하였고, 그저 아는 사이였기에 당시 신청인은 공사등으로 자금융통이 원활하지 않았던 점또한 알고있던터라  매매대금을 대신하여 차용증을 써주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채무로 남아있습니다.

시일이 지나자 추가출금액이 늘어나다 보니 금융권에선 보증인을 세울것을 권유했고, 농협에 대출받을 당시000과 000씨가 연대보증을 서주게 되었고, 물론 당연히 식당을 경영하며 충분히 갚을수 있으리라 예상했기에 저도, 상대방도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워낙 오랜시간 같은자리에서 장사하였고, 저희 부부가 인심또한 나쁘지 않았기에 보증을 부탁할 때 또한 큰 어려움없이 서로 믿고 서주게 되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때의 보증으로 인해 그분들이 대위변제를 하게되어 제게 구상금을 요구하는 상황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공사대금이 눈덩이 처럼 불어났고, 000씨에게 샀던 짜투리 땅이라도 팔아서 급한불을 꺼보려 하였으나 매매또한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채무는 말할 것 없이 늘어만 갔고 변제가 어렵게 되자 공사 또한 힘들어져 공사를 중단해야만 했고, 꿈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것만 같았습니다.
꿈이 무산된 것 보다 더 큰 충격은 사들였던 땅마저 경매로 넘어가고야 말았고,그와동시에 신청인과 아내가 그토록 땀흘리며 지어가던 저희의 집도 한순간에 모두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막상 경매로 모든 것이 넘어가고 나니 금융권은 물론이고 10년이상을 매일같이 얼굴보며 지내던 이웃들도 등을 돌리고 말았고, 지금까지 알던 사람들이 아닌것 마냥 빚독촉을 해댔습니다.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라 앉았고 당장 벌지 않으면 입에 풀칠도 어려워 다시 일용직을 다니며 일을 시작했고 아내 또한 잡다한 일을 하며 푼돈을 벌러 다녀야 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수근대는 소리가 들렸고,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 사글세 방을 얻었습니다.정말 하루하루가 악몽의 연속이었습니다.
신청인은 건설현장으로,,,,아내는 파출부로,,,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였지만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너무도 감사하게도 아이들은 그늘없이 한마디 불평없이 자기자리에서 열심히 생활하였고, 큰아이는 취업하여 번돈을 모아 저희 식구가 생활할 집 보증금까지 댔고, 작은 아이는 야간대학을 다니면서도 낮엔 아르바이트를 하여 가정에 보태고 있습니다. 힘들었지만 정말 힘들었지만 아이들을 보며 기운내어 하루하루를 버텨갔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면 조금씩 나아지리가 기대했던 저의 일상에 불운이 닥친건 얼마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어느날 죽을것만 같이 복통이 오기 시작하면서 병원으로 달려갔고 병원에선 ‘직장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너무도 억울해서 병원의사 선생님이 매정하게만 느껴졌고 신이 있다면 호소하고 싶을만큼 힘들었습니다. 암 치료를 받으며 몸은 점점 야위어만 가고 채무는 쌓여 있는데 병원비까지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이었습니다. 친지들의 도움으로 다행히 수술은 별 무리 없이 받았으나, 직장 절제 수술을 받고나니 정말 몸만 살아있을뿐 사람구실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보통사람들과 달리 화장실을 20~30분 간격으로 드나드니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황에이르렀고, 경제적으로 아내에게 더큰 짐을 지운다 생각하니 정말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에 차차리 집을 나가 노숙이라도 할까 하는 생각을 수백번도 더 했습니다.

이게 마지막이겠지,,,내인생에 더 이상의 불운은 없겠지,,,하며 지냈었는데
2008년 아내가 ‘유방암’ 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고 더욱 미안하고 평생 고생만 시켜 죄스럽기만 했습니다. 신청인을 간병하느라 아내는 본이의 건강이 악화된것도 잊은 채 견디고 있었다는게 너무 가슴아프지만 현재 신청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었습니다.

평생에 살면서 먹고 살기 바빠 건강을 돌보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 스럽습니다.
아내는 현재 2차례의 수술을 받았고 두차례의 수술을 남겨두고 있고 허리도 좋지 않아 움직이는것도 힘겨운가봅니다.앞으로 항암치료와 방사선등 힘든 치료들을 잘 견디어 줄지 걱정입니다.아내는 본인이 아픈데도 병원비와 변제비를 걱정하며 밤잠을 설치고 있습니다.걱정되는건 신청인도 마찬가지 지만 아내의 건강이 더욱 걱정스럽습니다.현재 신청인도 건강이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니라 경제 활동이 어려운 상태입니다.부모가 되어서 아이들에게 짐만되는것 같아 저희 부부는 아이들을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습니다.

치킨집을 할땐 얼른 돈모아 큰집으로 이사가려는 마음에 먹을것이며 입을것이며 후하게 해준적 없었고, 막상 식당 건설을 시작했을즈음엔 자금 융통이 어려워 한창 예민할 학창 시절에 걱정꺼리만 안겨주었었는데, 이제 경제적인것도 모자라 두부부가 아빠는 까맣게 타버린 얼굴로,,,,엄마는 항암치료로 인해 모발이 다 빠져버린채 병원에만 다녀오면 탈진해버려 아이들 끼니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채 이러고 있으니,,,,정말 자식볼 면목이 없습니다.


재판장님.

더 이상 가진 것이 없지만 신청인 부부의 여생 둘이 어깨에 기대며 위로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너무도 힘없이 늙고 병든 이 부부를 재판장님의 넓은 아량으로 구제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너무도 불어나 있는 엄청난 채무변제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채권자 여러분들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부디 재판장님의 넓은 아량을 베푸시어 신청인의 가정에 파산 신청을 허락해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에 관한 자세한 상담을 원하시면 언제든지 무료상담전화(02-587-1252)로 연락주시거나
저희 사무실로 방문하시어 보시길 바랍니다.
명쾌한 답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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